[민실위 외부 모니터링 보고서] 젠더 분야 – ″「2차 가해」라는 말, 가해자도 씁니다″

[1차 외부 모니터링 보고서: 젠더 분야]

“ 「2차 가해」라는 말, 가해자도 씁니다. ”

 

‘젠더 이슈 전문가 차담회’는 지난 8월 24일 열렸습니다. 차담회에는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영)과 조효정 뉴스룸 기자(정), 조윤미 시사교양본부 PD(미), 허원철 뉴스영상국 기자(철), 전동혁 민실위 간사(혁)가 참석했습니다. 차담회의 내용이 성폭력 관련 보도나 프로그램 제작의 가이드라인은 아니지만, 보도·제작 본부 구성원들이 성폭력 관련 취재와 제작 과정에서 가졌던 머릿속 고민과 마음의 짐이 있다면 이번 보고서를 통해 조금이라도 덜기를 기대합니다.

 

#2차 가해

혁: 취재·제작 부서에서 성폭력 관련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 항상 하는 고민이 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사실 확인이나 정황을 파악하려면 피해자에게 사건 당시 상황을 물어야 하는데 피해자에게 자세히 묻는 것이 못할 짓 같다.

영: 2차 가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피해자에게 묻는 것 자체가 2차 가해는 아니다. 사실 가해자도 피해자에게 물어보는 것은 2차 가해라는 말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 사건이 언급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기자·PD는 물론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람들까지, 피해자가 얘기할 곳을 없애기 위해서 가해자도 2차 가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말할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많다. 가족에게 얘기하기도 미안해서. 그래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얘기를 가감 없이 들어줄 기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심정적으로 큰 힘이 된다는 말을 한다.

미: 그래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답해주지 않으면 아이템을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영: 흔히 기자나 PD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피해에 대해 뭔가 미안한 감정을 가지면 상대가 좋아할 것 같지만, 사실 반대인 경우도 많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미안해하는 태도가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다. 아픔에 공감하더라도 피해자 앞에서 구태여 그것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자나 PD가 명료하게 질문하고 구체적 대답을 듣는 편이 피해자에게도 유리하다. 언론에 나선 피해자는 결국 법정까지 갈 가능성이 높은데, 질문을 받는 경험은 공적으로 피해를 호소하고 증명을 받을 때 굉장한 도움이 된다.

기자나 PD의 질문은 변호사의 질문과 비슷하다. 간혹 성폭력 피해자 중에는 변호사와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눈 뒤 기분이 안 좋아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는 피해자에게, 변호사는 감정을 치유해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해준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피해자와 같이 싸워서 피해자를 이기게 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다. 변호사는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할지 알려줘 피해자를 안심시키면 되지, 감정까지 치유해줄 의무가 없다.

언론인도 마찬가지다. 언론인은 보도에 필요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고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책무다. 언론인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의 마음을 조금도 다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건의 맥락을 사람들이 알게 만들어야 한다. 2차 가해가 언론인을 위축시키는 담론으로 적용되고 있어 안타깝다.

혁: 그렇다면 어떤 2차 가해를 조심해야 하는지?

영: 피해자의 인터뷰 내용을 왜곡시키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2차 가해다. 예컨대 피해자가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인터뷰에 응했는데, 정작 기사에는 인터뷰 당시 얘기하지 않은 ‘사건의 가장 선정적인 부분’을 다른 자료에서 찾아 헤드라인을 걸었다. 피해자 인터뷰는 그냥 그림이나 구색을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싶다. 피해자가 심지어 기자에게 항의했더니 “이렇게 보도가 나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 않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 때문에 인터뷰에 응한 피해자들이 나중에는 언론을 믿지 않고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설명과 묘사

정: 어떤 성폭력 보도는, 시청자를 이해시키기 위해 피해자가 그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2차 가해를 피하려고 상황을 뭉뚱그리다 ‘피해자는 그때 왜 그랬지?’라고 시청자들이 의문을 갖게 되면, 도리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가고 기사의 완성도도 떨어지게 된다.

영: 선정적이 될까봐 피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무조건 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상황을 정확히 알려줘야 사건의 본질이 전달된다면, 설명을 해주는 것이 옳다. 다만 무엇을 얼마만큼 설명하고 묘사해도 될지에 대해서는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철: 영상도 고민이다. 실제 사건 현장에서 외경이나 내부 모습, 특정한 사물 등 이미지 컷을 촬영해 영상을 구성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피해자가 나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영: 기사나 영상에서 묘사가 선정적인 경우는, 시청자에게 사건의 본질을 전하기보다 성폭력 사건을 실제로 본 것 같은 가시성만 높여줄 때다. 이미지 컷도 현장에서 일어났던 성적인 일을 상상하게 만든다면 주의해야 한다. 특히 영상에서 보여주는 시점이 가해자나 구경꾼의 시점일 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사례로, 사건 현장에 대한 스케치 영상이 피해자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사후 증거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경찰에 들어간 정보는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서 현장 정보가 필요할 때 보도 영상에 기대기도 한다.

뉴스를 보고 피해자가 나쁜 기억이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은 물론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되면 안 된다. 기사나 리포트는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다.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피해자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피해자의 멘탈이 부서질 것처럼 대하기보다 보통의 상식선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 설득

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사건은 결국 피해자가 나서지 않으면 방송하기 어렵다. 제보에 대한 사실 확인도 어느 정도 끝났는데, 피해자가 방송에 나가기 싫다고 하면 아무리 안타깝고 끔찍한 사건이라도 방송할 수가 없다. ‘포기하면서도 이게 맞나?’하는 고민이 많다.

영: 피해자가 나서지 않으면 방송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좋다. 하지만 보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피해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사건도 제대로 알리고 문제를 바로잡은 사례도 있다.

피해자 설득을 굉장히 잘 해내는 기자나 PD가 있다. 어떻게 했는지 알아봤더니 피해자의 문제와 상황에 대해 취재진이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인터뷰 도중 피해자가 현장에서 마음을 바꾸면 “카메라를 끄고 계속 얘기를 나눠도 되냐”고 묻는 등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피해자가 구경거리가 되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게 접근했다.

특히 방송에 대한 피해자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피해자가 언론이 두려운 이유는 방송이 어떻게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를 설득할 때, 취재진에게 한 말 중 걱정되는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 내보내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라고 알려주면 도움이 된다. 피해자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야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설득되지 않는다면? 제보를 들어보면 가해자의 범죄 수법이 악랄하고 추가 피해자 발생이 우려돼 공익적 목적에서 반드시 보도를 해야 하는데, 피해자가 나서지 않을 때가 많다.

영: 사실 그런 범죄일수록 피해자는 나서기 힘들다. 피해자는 자신이 나서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뽑힐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종교 시설이나 장애인 시설, 보육원 시설, 체육계나 연예계 같이 사회적 공간이 폐쇄되고 그 안에서 권력 관계가 확립된 집단에서 피해자가 나서기는 쉽지 않다. 피해자가 당한 일은 그곳에서 굉장히 오래 자행된 일이고,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문제를 제기해봤자 자신만 그 집단에서 쫓겨나고 끝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피해자의 말에 더 믿음을 갖고 귀를 기울여 추가 취재를 해야 한다. 당연히 보도를 포기하면 안 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추가 제보를 모으고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야 한다. 또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설이나 조직 등 주변을 대상으로 취재망을 넓혀야 한다. 고소나 징계가 있을 수도 있다. 또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범죄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다면 추가 피해자나 추가 범죄가 있을 가능성도 높다.

또한 꼭 보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제보된 사건만 일회성으로 보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폐쇄된 조직 안에서 권력 관계로 인해 벌어진 범죄라면, 보도 이후 시간이 지난 뒤 제보자와 또 다른 피해자들만 추가 피해를 받고 사건이 묻힐 수도 있다. 주변 취재 등으로 여러 피해자가 있는 범죄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면 차라리 크게 보도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그래야 같은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나선다.

 

#성별 표기

혁: 최근 인하대 추락 사건에서도 성별 표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성별을 구분하는 단어를 써도 될까?’ 하는. 문제가 되는 단어의 기준이 있는지.

영: 단순히 성별을 없애는 것이 성평등은 아니다. 여학생이 나왔으면 남학생이 나오면 된다. MBC의 보도처럼 피해 여학생, 가해 남학생을 같이 써주는 것은 괜찮다. 기사는 정보 전달이 목적이기 때문에 성별 표기가 상황을 더 정확히 전달한다면 균형 있게 써주면 되고, 성별 표기가 필요 없다면 남녀 모두 빼면 된다.

성별 표기에 고민이 많다면 참고할 만한 기준이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인종 문제 때문에 흑인이나 백인 표기에 대한 고민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성별도 인종과 관련된 기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만약 표기를 통해 어떤 집단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경우라면 성별 표기를 해도 된다. 최초의 여성 000, 최초의 남성 000 등은. 성별을 써줘서 그 집단에서 소수로 있는 사람이 긍정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면, 표기해 주는 것이 뉴스의 목적에 부합한다.

반대로, 부정적인 기사에 성별이 쓰일 때는 어떤 집단에 대한 편견이 가중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07년 조승희 씨가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 난사를 했을 때 미국 기자들 사이에서 [아시안이라는 표현을 가능한 줄이자]는 긴급 메시지가 돌았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가중시키고 편견에 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의 경위가, 가해자의 성별이나 우리 사회에서 특히 차별받는 국적이나 지역 등의 집단과 관계가 없다면 가급적 안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여성 피해자, 남성 가해자라는 표현조차 고민했던 MBC의 입장은 인하대 사건의 선정적 열기를 빼는데 조금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인하대 사건은 정말 가슴 아픈 사건이다. 억울한 사망 사건인데도 유족의 얘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피해자가 발견된 상황을 다룬 첫 보도가, 피해자를 너무 선정적이고 끔찍한 방식으로 모욕했기 때문이다. 인하대 사건은 범행이 발생한 장소의 문제, 신입생 피해자의 문제 등을 짚어줄 수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첫 보도가 너무 선정적으로 구성돼 담론이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표현은 언론이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다.

정: 요즘은 동성간 성폭력도 꽤 많이 일어난다. 이를 기사화할 때는 어떻게 성별 표기를 해야할 지 고민된다.

영: 동성간 범죄도 표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이는 성별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편견에 대한 문제다. ‘동성간 성폭력’이라고 하면 동성애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둘은 완전 다른 얘기다. 군대 내 동성간 성폭력 사건 관련 연구로 수감된 가해자들을 만났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이성애자였다. 그러나 동성간 성폭력이라는 용어 때문에 동성애자가 가해자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사건의 구체적 전달을 위해서라도 남성간 성폭력, 여성간 성폭력이라고 정확히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성폭행과 성비위

혁: 일선에서 표기에 고심하는 이유가, 제목이나 부제에 쓰이면 전체 의도가 오해받기 때문이다. 특히 성범죄 관련 단어는 성폭행, 성추행, 성비위 등 어떤 용어가 적확할지 마지막까지 기준을 놓고 고민할 때가 많다.

영: 사안에 따라 성폭력, 성폭행, 성추행, 성비위를 구별해 쓰는 것이 틀리진 않다. 다만 성비위는 대체로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품위와 관련해서 많이 쓰인다. 그런데 성비위에는 성폭력과 성추행도 들어가지만 간통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어려운 것도 포함된다.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예를 들어 예전에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성 군기 문란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면 성폭력 사건이 아닌 군기 문제가 되고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돼서 처벌을 받는다. 지금은 이런 문제들이 지적돼 성폭력·성희롱 문제라고 지침에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성폭력 문제를 성비위라고 표현할 경우 성폭행보다 공무원의 풍기문란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품위손상 같은 사건은 해당 사건에 연루된 이들을 ‘조직에 피해를 끼쳤다’고 보고 징계한다. 조직이 피해자, 관련당사자들이 가해지인 셈이다. 하지만 성폭력·성희롱 사건은 이와 전혀 다르다. 피해자 권리를 보장하고 조직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건이다. 언론은 이것을 이결하게 구분해서 쓰는 것이 필요하다.

 

#금기의 이유?

혁: 인하대 추락 사건과 관련된 여러 기사에서 ‘여대생’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문제가 되는 단어의 기준이 있나.

영: 여대생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는 남대생이다. 그런데 남대생은 많이 쓰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고사-남교사, 여의사-남의사, 여기자-남기자는 한쪽이 어색하지 않나.

정: 그 때문에 필요할 때는 여성 교사, 남성 기자 등으로 풀어쓰긴 한다.

철: 그런데 사실, 이런 표기에 대한 고민을 왜 그리 심각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실제 대학생 사이에서 ‘여대생’이란 말은 거의 안 쓴다. 그리고 성별과 관련된 단어들도 젊은 세대에서는 안 쓰는 경우가 많아서 뉴스에 나오면 오히려 위화감이 들 때가 있다.

영: 정작 해당 인구 집단에서 쓰지 않는다면 더욱 쓸 이유가 없겠다.

정: 데스킹할 때 후배들이 이런 이유를 설명해주면 좋은데, 데스킹이라는 과정 때문인지 얘기를 잘 안한다.

철: 쓴 적 없는 말이라…. 왜 안 쓰는지 이유나 맥락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영·정·미·혁: 젊은 세대에게 여대생이라는 말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를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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