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외부 모니터링 보고서: 노동인권 분야]
노동인권저널리즘, ‘기계적 중립’ 탈피하고
금융·산업구조 등 경제 전반으로 접근해야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지난 7월 벌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사태는 7월 14일 노동부·산업부 장관의 ‘불법파업 중단’ 대국민 담화와 18일 법무부·행안부 등 5개 부처 장관의 공동 담화문, 그리고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밝히며 긴장이 고조됐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직접 “공권력 투입도 당연히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공권력 행사를 고려하고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연히 고려하고 있다”며 ‘제2의 쌍용차 사태’까지 언급했다. 경찰은 파업 대응 인력을 확대하고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는 등 공권력 투입을 준비했다.
파업에 대한 정부의 무력시위에 대다수 신문은 공권력 투입에 목소리를 보탰다. 중앙일보는 “쌍용차 노조의 긴 투쟁의 결과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기 바란다”고, 매일경제는 “공권력을 투입해 불법 점거를 끝내는 게 바로 살아있는 정의”라며 촉구했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강성노조의 집단이기주의에
공권력의 엄정함을 보여 줘야 할 때다.” |
세계일보 |
“이번엔 반드시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려야 한다.” | 조선일보 |
“쌍용차 노조의 긴 투쟁의 결과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
중앙일보 |
“하청 노사 간의 협상 결과를 떠나
불법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
국민일보 |
“공권력을 투입해 불법 점거를 끝내는 게 바로 살아있는 정의다.” | 매일경제 |
“정부는 말로만 ‘법과 원칙’을 외치지 말고
법치의 엄정함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
서울경제 |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엄정한 법 집행으로
정부의 존재이유를 보여줘야 할 때이다.” |
한국경제 |
그러나 여론은 정부나 재벌신문의 바람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노동인권저널리즘’은 정부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조선소 하청노동의 실태를 면밀히 취재해 보도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벼랑 끝 파업’의 배경에는 다단계 하청구조로 인한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고용불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스스로를 “존재 자체가 불법이고 차별”이라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 씨의 하소연을 국민에게 전달했다. 이런 보도가 ‘균형추’ 역할을 하며 여론의 균형이 잡혔다. 극단적 갈등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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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소 안하면 배임? 파업 피해 책임은 왜 노동자만 지나 | |
우린 살기 위해 떠났다‥조선소 호황에도 인력 썰물 | 한국일보 |
“이게 귀족노조의 급여입니까”…하청 노동자의 호소 | |
다단계 하청 구조…경력 10년도 ‘최저임금 수준’ | SBS |
협상 관건은 ‘손배소’…파업 손해 책임은 누가 | JTBC |
사면초가 빠진 하청 노동자 목소리 들어준 MBC
MBC 또한 중계식 보도에 그치지 않고 파업에 이르게 된 배경과 원인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정부와 산업은행의 역할, 다단계 하도급의 문제, 저임금 불안정 고용 실태 등 주요 쟁점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극 제공했다. 특히 ‘기계적 중립’에 빠져 노동조합과 회사, 정부의 입장만을 소개하고 현장을 중계하는 수준의 보도에 그친 다른 공영방송사의 보도와 비교하면 이번 MBC의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보도는 방송 뉴스의 ‘노동인권 보도’ 전형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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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지점도 있다. 노동문제는 노동자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금융과 산업 구조 등 경제적 측면과 복지나 법령 등 정책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근본적 원인이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게 만들고 목소리를 내게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하청 문제의 과거·현재·미래를 보려면 조선 산업의 맥락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선박 수주가 줄자 ‘빅3’ 조선소는 해양플랜트를 대거 수주했다. 해양플랜트는 작업난이도가 높고 위험하다보니 직영 노동자들은 자원하지 않았고 대부분 하청노동자 몫이 됐다. 경험이 부족한 일용직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결과적으로 해양플랜트 공정은 지연됐고 현금유동성도 떨어졌다. 결국 2015년에는 유가 하락으로 해양플랜트 수주가 급감하며 구조조정이 일어났다.
조선업이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공급망 체계 재편을 맞아 사상 최대의 호황을 타고 있다고 하지만, 앞서 경험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 경험 있는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고, 호황이라고 해서 현금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LNG운반선과 대형 컨테이너선은 수주 이후 인도하고 대금을 받을 때까지 2~3년이 걸리고,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올라 ‘후판’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윤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의 관점에서는 산업은행과 정부의 책임을 지적할 수 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에서 산업은행과 정부는 사실 제3자가 아닌 당사자다. 단지 산업은행이 55.7% 지분을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이기 때문은 아니다. 산업은행과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적 문제를 자본으로 해결하려다 위기만 더욱 키웠다.
지난 2015년 대우조선은 분식회계로 전 사장이 유죄를 받았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공적자금 4조2000억 원을 투입했다. 이어 2017년에는 2조9000억 원이 추가 투입됐고 출자전환과 유상증자 등으로 총 10조원이 넘는 공적 자원이 투입됐다. 또한 산업은행이 무리하게 강행했다 실패한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인수합병 시도의 실패는, 고스란히 대우조선해양의 피해로 돌아왔다.
정책적 관점으로는 이번 파업에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었다. 지난 2021년 비준된 ILO 핵심협약에 따르면 △간접고용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 보호를 강화하고 이들의 기본적 권리 행사를 저해하는 하청 남용이 없어야 하며, △관련 노동조합과 간접고용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 사이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하며,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파업은 불법이 아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과 현대제철을 상대로 간접고용·특수고용노동자가 제기한 교섭거부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통해 원청의 사용자성이 있으며, 교섭의무가 있음을 확인했다. 비정규직노동자가 노조를 만드는 이유는 교섭을 하기 위한 것인데, 실질사용자와 교섭이 안 되니까 극단적인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20년째 반복되는 것이다.
노동 전문기자 도입 환영‥특정 개인에 의존할까 우려도
MBC의 ‘대우조선 하청지회’ 파업 보도가 질적인 발전을 이룬 배경에는 ‘(예비)전문기자제’ 도입이 큰 몫을 했다. 노동 전문기자를 준비하는 차주혁 기자는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인터뷰에서 “단순히 정책이라든지 현상을 보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많이 한다”며 “제 주변의 모든 사람도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였던 사람이고, 제 아이도 언젠가 노동자가 될 겁니다. 삶과 직결되는 노동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노동은 분명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핵심 의제다. 다만 방송사 보도국의 취재 시스템에서 특정 개인에게 ‘노동보도’를 의존할 경우 인력 상황 등에 따른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노동문제는 안에서 보는 것만큼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은 ‘노사관계’로 제한되지 않는다. 노동 문제는 세금과 복지, 고용 정책 등 국가의 경제 정책이 직접적으로 관련돼있다. 또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사례만 해도 금융·산업구조·ILO 협약 등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전문기자제의 정착과 함께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