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회 성명] 누가 누구를 징계하는가

기어이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겠다고 한다.

회사 경영진이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을 온라인에 게재한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기자에 대해 오는 26일 인사위원회 개최를 통보했다. “회사와 임직원을 근거 없이 비방해 취업 규칙을 위반했고 ‘공정성’과 ‘품격 유지’를 규정한 MBC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는 게 그 이유다.

낯 뜨겁지 않은가.

MBC에서 공정성과 신뢰성이란 공영방송의 가치를 말살한 장본인은 누구인가.
시청자들이 뉴스데스크를 조롱하고, 또 외면하게 만든 주역은 누구인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보도국 수뇌부, 자리 보전과 충성 경쟁에 혈안이 된 대다수 보직 부장, 그리고 ‘주는 대로 받아쓰는’ 데 거리낌이 없는 영혼 없는 기자들이다.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은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이들을 대신해 시청자들을 향해 고개숙인 ‘사죄’이자 MBC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호소’였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징계한단 말인가. 처참하게 망가진 일터를 다시 일으켜보자는 절규가, 사망선고 직전의 뉴스를 다시 살려보자는 몸부림이 어떻게 ‘해사 행위’가 될 수 있는가.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

정당성이 없는 징계 시도라는 건 사측도 잘 알 것이다.

이미 자행된 유사 징계에 대해 법원은 “소셜미디어 네트워크는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인 영역이고,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표현 방식과 표현 내용의 자유는 공적인 영역에서보다 넓게 보장되어야 한다”며 1심부터 최종심까지 일관되게 징계 무효를 선고했다. 더구나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은 구성원 어느 누구의 동의는커녕 의사조차 묻지 않고 회사 경영진이 자의적으로 만들었다. ‘내가 그어 놓은 선을 넘어오면 너를 처벌하겠다. 나를 비난하지도 마라’는 초헌법적 발상의 결과물이다. 징계권이란 방패 뒤에 숨어 이런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징계를 일삼는 건 결국 회사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틀어 막겠다는 저열한 의도일 뿐이다. 개인적 소통 공간마저 회사가 입맛대로 통제하겠다는 ‘광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나아가 자신이 허락한 지인들만 볼 수 있게끔 설정한 SNS 글까지 사측이 징계사유로 내민 데 대해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가 사원 개개인의 사생활을 낱낱이 사찰하고 있다고 스스로 실토한 셈 아닌가? SNS에서 다른 사원을 비판한 걸 회사가 대신 나서서 징계까지 해주겠다는 건 누구의 발상인가? 유신시대 막걸리 보안법 딱 그 수준이다.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가는 경영진의 ‘권력’이 이따위 표적 징계, 청부 징계로 다시 설성 싶은가?

이미 96명의 선배 기자들이 막내들이 반성문을 올리게 된 데 대한 경위서를 공개적으로 제출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제 4년차, 험한 현장 마다않고 MBC 뉴스를 위해 헌신해 온 기자들이다. 이런 막내들의 쓴 소리에 기어이 징계로 화답하겠다면 경위서를 함께 작성한 선배 기자들을 모두 징계하라.

MBC막내기자들의 경위서, 선배들이 제출합니다

아울러 기자협회는 ‘인터뷰 조작 의혹’ 제기와 관련해 김희웅 전 기자회장과 이호찬 전 민실위 간사를 인사위원회에 함께 회부한 사측의 저열한 행태에 또 한번 분노한다.

두 사람은 해당 사안이 공개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지난해 5월부터 사측에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 파악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무시로 일관하던 사측은 이 사안이 외부에 알려진 뒤에야 “인터뷰엔 문제가 없다”며 거꾸로 의혹 제기 과정을 ‘사찰’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내부적인 자정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찬 사측이 ‘자료 유출’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가.

기자의 취재 윤리와 도덕성이 심각하게 의심되는 사안에 대해 기자들을 대표하는 기자협회장과 공정 보도를 감시하는 노조 민실위 간사가 문제를 제기했다. 만약 사측에 진실 규명 의지가 있었다면 해당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당연히 작동해야 할 최소한의 자정 능력조차 없다는 것을 자인했다.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채 도리어 의혹을 제기한 과정을 문제 삼는 비상식적 작태를 우리 기자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게다가 해당 의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애초 3개의 인터뷰 파일에 대해 조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감사국은 2개에 대해서만 확인했고, 그마저 인터뷰이 2명의 실제 직업은 확인하지도 않았다. 방송 자막에 나온 해당 직업 종사자가 맞는 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감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과가 뒤바뀌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데도 성문분석 결과 등 감사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구성원들에게 납득할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두 사람에 대해 징계에 나서는 건, 결국 그동안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 뉴스에 대해 비판해 온 이들에 대한 ‘보복 징계’일 뿐이다. 보도국 밖으로 쫓아낸 보복 인사로도 모자란단 말인가.

공영방송의 역할은 무엇인지, 시청자와의 신뢰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따져 묻고자 했던 막내 기자들과 전 기자회장, 전 민실위 간사에 대한 징계 시도에 대해, 기자협회는 상식과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기자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한다. 아울러 어떤 징계라도 자행된다면 그 과정을 주도한 자가 누구인지 철저히 가려내고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또 막내기자가 징계를 받게 생겼는데도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이를 도운 기회주의자, 지켜만 본 방관자들도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치의 정당성도 없는 ‘부당 징계’ 에 맞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함께 행동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2017년 4월 24일
MBC 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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