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실위 보고서] 판단의 ′부재′인가, 판단의 ′과잉′인가

판단의 ‘부재’인가 판단의 ‘과잉’인가 
‘김윤옥 여사 인사 로비 개입 의혹’ 기사 누락

 

11월 1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을 통해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연임 과정에서 김윤옥 여사에게 거액의 금품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강 의원의 발언은 금품이 오고 간 날짜와 장소 등 구체적인 정황을 담고 있었고, 청와대와 여당은 면책 특권을 악용한 소설 같은 주장이라며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1보 스트레이트 기사조차 없어

 

조중동을 포함한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인터넷과 지면을 통해 기사를 쏟아냈고, KBS와 SBS도 주요 뉴스에 리포트로 이를 알렸다. 그러나 우리 뉴스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당일 대정부 질문에서 제기된 두 가지 주요 쟁점은 첫째,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한 총리실 윤리지원관실에 대포폰을 줬다는 사실이고, 둘째, 김 여사가 인사 로비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었다. 이중 <청와대 대포폰 지급 보도>는 방송 3사 가운데 우리 뉴스만 별도 리포트로 비중있게 다뤘다. 그런데 <김 여사의 로비 연루 의혹>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1보 스트레이트 기사로도 다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반응만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됐을 뿐이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상황, 어찌된 것인가.

 

근거 없는 주장일 뿐, 사안의 파급력은 예측하지 못했다?”

 

정치 부장은 “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증권가 정보지에 나돌던 이야기였고, 신뢰할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근거 없이 제기된 주장으로, 리포트 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외압이나 정치적 고려가 아닌 객관적인 기사 가치에 대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사안이 이렇게까지 확대될 것이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기사를 놓친 셈이 됐지만 당시 판단엔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1보 스트레이트 기사가 없는 건 명백한 실수로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정치적 고려인가 판단 능력의 부재인가

 

강 의원의 의혹 제기만 놓고 본다면, 사안을 뒷받침할만한 근거 없이 ‘루머’처럼 떠도는 설을 종합한 것은 아닌지 신중한 접근도 필요하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판단은 달라진다.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야당이 정권의 핵심인 청와대 영부인을 공격했고, 청와대와 여당은 의혹 제기 1시간 30여분 만에 전례없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 상황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전달할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아닌가. 단순히 여야 간의 공방으로만 치부하기엔 차원이 다르다. 만약 ‘사실’이라면 정권에 치명타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소설’이라면 야당이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데도 사안의 중대성이나 파급력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정치 부장은 청와대, 여당, 야당 등 각계의 입장을 취재기자들로부터 모두 보고 받는다. 때문에 상황 전반에 대한 면밀하고도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다. 과연 정치부, 나아가 편집회의 차원에서 그만큼의 종합적인 논의와 판단이 있었던 것인가. 외압이나 정치적 고려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면 진정 판단 능력의 부재란 말인가. 분명한 건 그 어느 쪽이든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안의 본질은 사라지고…일관성 없는 MBC 뉴스

 

사안이 확대되자 우리 뉴스는 다음날(2일) 부랴부랴 뉴스데스크 톱 뉴스로 두꼭지나 내보냈다. 사안이 커지니 뒤늦게 따라간 셈이다. 더구나 기사 내용을 보면 대통령이 진노했고, 여당이 강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한다는 내용과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등 청와대와 여당의 반응 위주다. 이쯤 되면 MBC 뉴스의 기사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오해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의혹을 보도하는 데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운운하는 정권의 목소리는 여과 없이 전달하는 MBC 뉴스, 중립성을 지켰다고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안의 본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김 여사가 인사 로비에 개입했다는 의혹’의 진실은 무엇인가. 시청자들이 진정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뉴스 어디에도 사실 여부를 규명하려는 노력이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 뉴스에서 조차 사안의 본질이 이대로 면책 특권 논란에 묻혀버리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 뉴스가 타사와 달리 별도 리포트로 비중 있게 다룬 ‘청와대, 총리 지원관실에 대포폰 지급’ 사실도 면책특권 논란과 청와대와 여당의 침묵 속에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시청자, 아니 국민들에게 진정 알려주어야 하는 뉴스는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권 상실의 시대 – ‘인권위 사태’ 기사도 실종

 

11월 1일 국가 인권위원회의 유남영, 문경란 두 상임위원이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혀 파문이 일었다. 2001년 인권위가 설립된 이후 처음 벌어진 사태다. 그동안 인권위가 용산참사 건, 총리실 불법 민간인사찰 건, 라 뤼 UN 특별보고관 사찰 건,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제청 등 국가 기관의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서 ‘식물위원회’란 말이 나올 정도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 반향은 컸다.

우리 뉴스도 당일 오전부터 저녁 뉴스까지 이 사태를 비중있게 다뤘다. 그런데 정작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에선 보도하지 않았다. KBS, SBS는 물론 타 언론사들이 일제히 다룬 사안이었다. 사회부장은 “상임위원들이 어떤 사안을 두고 의견 충돌이 있어 그만두고 나오는 것이라면 고민할 게 없었겠지만, 사퇴 의사를 밝힌 이유가 내부 운영 방식이었기 때문에 ‘내부 갈등’이란 측면이 더 강해 보였다. 인권위의 ‘내부 갈등’이 일반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잘 와 닿지 않았다. 이후 실제로 인권위에서 현안이 제대로 처리되는 못하는 등 파행이 일어나고 시민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면 그때 다뤄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기사를 외면한 것은 아니고 낮 동안 충분히 다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편집회의에도 보고하지 않았는데, 다음날 아침 편집회의에서도 보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물론 인권위의 ‘내부 갈등’이다. 그런데 그 ‘내부 갈등’이란 것이 흔히 말하는 ‘집안 싸움’이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라 믿는다. 지난 7월 현병철 위원장이 부임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현 위원장이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의결이나 의견 표명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 아래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와 국가가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제청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 여부를 모두 부결시키면서 일부 상임위원들과의 갈등이 누적됐고, 최근 인권위 운영 규칙마저 위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될 수 있도록 개정하려 하면서 갈등이 폭발된 것이다. 단순히 조직 운영에 대한 반발로 치부할 수는 없는 사안이다.

특히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촛불집회와 용산 참사 강경 진압부터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까지 국가 기관이 인권을 위협하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고, 일반 시민들조차 위압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인권위 사태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에 관한 설명이 더 필요한 것인가. 사회부장은 “그런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다시 판단하겠다”라고 밝혔다.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권력이 이를 침해하려 할 때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이와 관련된 사안들만큼은 현재 우리 사회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정치적 이념과 성향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뤄져야할 것이다.

 

* 문화방송노조특보 제161호 <2면> 민실위 보고서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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