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메시지’ 파문으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해외 특파원이 최근 스스로 특파원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동안 조직이 겪었던 혼란과 별개로, 당사자에게도 가볍지 않은 시간과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앞서 내부 구성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데 이어 본인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결정한 것에 대해, 늦었지만 책임을 인정하고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 평가한다.
하지만 구성원 모두에게 남겨진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해외 특파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다.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는 전문성과 축적된 취재 경험을 전제로 선발되며, 그 과정에는 치열한 내부 경쟁과 엄격한 검증이 뒤따른다. 외교·안보·국제 정치 등 민감한 현안을 현지에서 취재하고, 공영방송 MBC의 이름으로 뉴스 한 줄 한 줄을 전하는 자리다. 이번 일의 여파로 당분간 현장의 공백은 피할 수 없게 됐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조직이 떠안아야 한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MBC 구성원들이 불편부당의 원칙 아래 쌓아온 보도의 공정성과 신뢰가 한순간에 의심의 대상이 됐다는 점은 그 어떤 업무적 공백보다 더 치명적인 손실이다.
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 이 사태를 정리할 수는 없다. 문제의 발단이 무엇이었나. 집권 여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최민희 의원의 부적절한 언론 개입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방송과 통신, 과학기술 전반을 둘러싼 법과 제도를 심의해야 할 국회의 핵심 상임위원장이 국감장에서 공영방송의 개별 보도를 문제 삼았다.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MBC 보도가 “중립적이지 않다”며 보도본부장에게 따지다 퇴장시켜 버렸고, 이러한 부적절한 처사를 지적한 MBC 기자들의 성명서를 “웃긴다”고 비하했으며, “쫄보”라 조롱까지 했다. 비속어와 비아냥거림,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과 품위를 의심할 만한 수준의 표현이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지켜내야 할 소관 상임위원장이 오히려 사적이고 감정적인 용도로 자신의 권위를 휘둘렀다. 명백한 권한 오남용이다.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최민희 위원장은 자신의 언행에 대해 MBC와 그 구성원들을 향해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유감을 표명한 뒤에야 떠밀리듯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님께 사과드린다”고 밝혔을 뿐이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기된 논란과 비판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힐 뿐, 사안의 본질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나 사과로 보기 어렵다. 국회 과방위원장은 방송3법 후속 조치를 점검하고 내란 정권이 망쳐놓은 공영방송을 정상화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짊어진 자리다. 그럼에도 침묵과 회피, 외면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다면, 그러한 태도로 과연 앞으로도 그 직무의 무게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일에 대한 회사의 대응 역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당과 최 위원장에 대한 저자세 일변도의 태도, 조합과 기자회의 문제 제기 이후에야 한 발씩 늦게 움직이는 듯한 대처 속도는 어떠한 이유로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현재 MBC는 신뢰도와 시청률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그만큼 MBC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기대 또한 크다. 이런 때일수록 공영방송의 신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사안에는 더더욱 단호하고도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현장에서 힘겹게 쌓아올린 성취가 회사의 원칙 없는 미흡한 대응으로 인해 흔들리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조합은 이번 사안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히고 봉합되는 일로 보지 않는다. 언론을 대하는 권력의 태도, 그에 대한 조직의 대응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공영방송의 기준이 무너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의 구성원들과 국민에게 돌아간다. 최민희 위원장의 책임 있는 사과와 회사의 분명한 입장, 재발 방지를 위한 명확한 원칙 천명 없이는 끝나지 않을 문제다. 조합은 계속해서 묻고, 또 기록할 것이다.
2025년 12월 1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