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신입공채 입사자 일동 성명] MBC 막내기자들의 반성, 동기들의 고백

어쩌다 보니 ‘공채 마지막 기수’로 불리고 있습니다. 저희 기자 동기들은 입사한 지 만 3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MBC 막내기자들’입니다. 무성한 소문들은 여러 입을 거쳐 저희에게도 돌아옵니다. “막내들이 수습기간 끝나자마자 노조에 가입하는 바람에 위에서 공채를 없앴다더라.” 우연히 술자리에 합석하게 된 타 부서 선배는 “아, 너희가 소문으로만 듣던 걔들이구나, 막내들”이라고 반깁니다. 그렇게 저희는 괜한 눈치와 사실은 저희 몫이 아닌 죄책감 속에 ‘막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이 글을 읽는 어떤 분들에겐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저희가 퇴진을 요구하는 분들에겐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저희가 직접 겪은 일들입니다.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인 MBC에 입사했습니다. 치열했던 파업 당시, 저희는 직장인이었거나 학생이었습니다. 평범한 국민, 시청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MBC에 입사하기 위해 공부하던 ‘언시생’들이었습니다. 파업 때 선배들이 외쳤던 ‘공정방송’은 입사 후로 잠시 미뤄뒀습니다. 저희는 파업을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잘 몰랐습니다. MBC 구성원이 아닌 분들도 그럴 겁니다. ‘MBC가 망가졌다’ 말만 들었지, ‘에이 설마’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MBC니까요.

마침내 ‘언시생의 꿈’이던 MBC에 입사했을 때, 이곳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선배들은 다양한 부서에 다채로운 형태로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TV에서 보던 기자, 아나운서 선배들을 이름도 생소한 부서의 책상에서 발견했고, 각자의 프로그램에서 마케터로 만나게 됐습니다. 한 동기는, MBC 입사 결심 계기였던 책을 쓴 PD선배가 스케이트장 관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선 끝내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회사는 자꾸만 그들의 존재를 지우려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 사이 MBC는 추락했습니다. 신뢰도 순위는 뒤에서 세는 것이 더 빨라졌고, “<무한도전>만 아니면 벌써 채널 삭제했다”는 말은 이제 익숙합니다. 회식 때, 식당 TV에 틀어져 있는 <뉴스데스크>를 다른 채널로 바꿔달라 부탁하는 것도 일상입니다. 인트라넷에 접속하면 구성원인 저희는 동의한 적도 없고, 누가 썼는지도 모를 글이 ‘MBC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어김없이 극우세력의 주장을 재생산하고 누군가를 매도하는 글입니다.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품위를 지키지 않았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는 징계 소식엔 이제 무감각해졌습니다.

쫓겨난 선배들의 빈자리는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채용으로 채워졌습니다. 언제 뽑혔는지, 왜 뽑혔는지도 모를 분들이 ‘MBC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허울 좋은 ‘청년일자리 특별생방송’의 이면에는 ‘경력 없는’ 경력사원, 단기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청년 일자리를 위협하는 회사의 자화상이 있습니다. ‘방송 경력 무관, 6개월 이상’ 경력사원인 저희 후배들은 신입도, 경력도 아닌 애매한 형태로 연봉제의 인질이 되어 있습니다. 단기 계약직 후배들의 상황은 더 우울합니다. “선배님, 저희 중 몇 명이나 정규직으로 전환될까요?”라는 후배의 질문에 말문이 막힙니다. 저희가 이들의 고통에 기여한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합니다.

노조에 가입했다가 탈퇴 종용을 받고서 고민하며 우는 ‘경력사원’ 후배에게 술을 사준 동기는 차라리 낫습니다. 후배는 고사하고 자꾸만 쌓여가는 ‘확실치 않은 선배’들 사이에서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기는 참으로 괴롭습니다. ‘시용 기자’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지 않았다고 ‘싸가지 없다’고 소문난 동기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합니다. 그리고 그 허리는 국민 여러분께 전하는 반성문에서만 굽혔습니다. 꽤나 많은 후배들이 들어왔지만 아직 저희는 ‘막내’입니다. ‘만나면 좋았던 친구 MBC’와 함께 사라진 ‘새로운 막내들’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극기,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며 “MBC만이 잘하고 있다. 다른 놈들은 다 빨갱이야!” 외치는 분들이 회사 앞에 진을 치고, 내 회사 들어가는데 경찰에게 사원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 왜 늘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입니까?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며 반성하는 기자들을 징계하는 회사는 누구의 품으로 돌아가겠단 말씀이십니까? 이제 제발 그만 좀 부끄럽고 싶습니다.

‘언론인’이 되고 싶어 MBC에 왔으나 회사는 ‘기능인’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본받고 싶은 선배들은 자취를 감췄고 반면교사는 필요 이상으로 많아졌습니다. 물론 ‘1타 강사님’들은 이제 말하기도 입 아픈 분들이지요.

MBC 김장겸 사장님,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님 사퇴하세요.

마지막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속 문구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MBC의 현실에 처절하게 들어맞는 문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은 구원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도망치는 사람들에겐 명예도 안전도 없다.”

 

2013년 신입공채 입사자 전원
드라마본부 : 노영섭 박상우
미디어사업본부 : 김기민
방송인프라본부 : 김선호 이상근
보도본부 :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예능본부 : 김지우 노승욱 현정완
편성제작본부 : 박연경 박창현 임현주 차예린
(이상 1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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