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무 사퇴로 무마? 문제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관이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결국 물러났다. 대통령실은 오늘, ‘윤석열 대통령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사의를 수용했습니다’라는 짤막한 알림을 출입기자들에게 보냈다. 새벽 6시 49분에 보내진 문자에는 그 어떤 배경 설명도, 형식적인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 여론이 심각하게 악화하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조차 반기를 들자, 마지못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무마하려는 모양새다. 선거 판세 전환을 위한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이다. 하지만, 해결된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MBC는 잘 들어’로 시작한 망언은 황 수석의 입을 통해 전해졌을 뿐, 근원적 문제는 군사독재 시절 이상으로 폭압적이고 왜곡된 윤석열 정권의 언론관이기 때문이다.
총선 앞두고 마지못해 꼬리 자르기…“바보야, 문제는 그 썩어빠진 언론관이다”
황 수석의 뒤늦은 자진 사퇴 과정은 윤석열 정권의 비겁함과 사악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황 수석은 망언이 알려지고 국민적 비난이 쏟아진 뒤 불과 4줄짜리 사과문을 발표하면서도 사퇴는 거부해왔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망언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장 경질해도 모자란 사안임에도, 대통령실은 나흘이 지난 뒤에야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입장을 밝혔다. 또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심각한 자기부정의 말을 더하며 국민적 비난에 기름을 부었다. 황 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를 명확히 거부하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아무 잘못 없다’는 식으로 맞선 것이다. 이런 윤석열 정권이 이틀 뒤 갑자기 정신을 차려 황 수석을 물러나게 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달랑 한 줄짜리 알림을 통해 자진 사퇴를 수용했다고 밝힌 것은, 하고 싶고 해야 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인사 조치했다는 방증이다. 선거 공학적 손익계산에 따라 한발 물러서는 시늉을 하는 것일 뿐, 총선만 아니었다면 또다시 묵살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변한 것은 없다.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해 논란을 자초해놓고, 이를 보도한 MBC에 대해 ‘좌파 언론의 정치공작’이라고 뒤집어씌우고 협박하는 게 윤석열 정권의 언론관이다. 정권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 만한 보도를 하면 온갖 트집을 잡아 벌점 테러를 하며 언론사의 생존 자체를 겁박하고 있는 게 윤석열 정권이다. ‘권력 감시’란 언론의 사명을 존중하기는커녕 정권 비판적 언론에 칼을 들이미는 그릇된 언론관이다. 이런 썩어빠진 언론관이 전면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황상무는 또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윤석열식 언론관…“차기환·김병철은 물러나라”
이미 윤석열 정권의 왜곡된 언론관은 독버섯처럼 곳곳에 퍼져 MBC를 옭아매고 있다. 어제 오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여권 이사들은 황 수석을 오히려 옹호하며 MBC가 황 수석의 발언을 왜곡하고 과도하게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여권 추천인 김병철 이사는 “아무 문제도 아닌 걸 언론의 자유 문제인 양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황당한 발언까지 쏟아냈다. 또 “시민사회수석은 본질적으로 방송과 관련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기자 출신이다 보니까 기자 후배와 사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려 애썼다. 차기환 이사 역시 “방송사에 대한 위협을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한 발언이 아니”라고 단정하면서, “전체 맥락에서 일화 하나를 떼어내서 보도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황 수석의 망언에 대해 방문진 차원에서 입장을 표명하자는 다수 의견에 완강히 반대했다.
5.18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한 폄훼를 일삼았던 차기환을 비롯해 여권 추천 방문진 이사들이 윤석열 정권의 시각 그대로 MBC를 공격해 온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실 고위공직자가 “MBC는 잘 들어”라고 콕 집어 말하며 사실상의 테러 협박을 한 것에 대해서도 일방적 옹호에 급급한 이들에게 과연 방문진 이사의 자격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MBC가 공영방송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MBC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방문진의 역할 아닌가. 황 수석조차 자신의 망언을 사과했고, 여야를 막론하고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임에도, 무조건 두둔하고 되레 MBC를 비난하는 방문진 이사의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특히 문제의 발언이 있을 때마다, ‘사적인 발언’, ‘불순한 왜곡 보도’ 등 윤석열 정권에서 반복돼 온 역공의 키워드들이 방문진 이사회에서도 버젓이 재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결국 문제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관이다. 힘겹게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는 윤석열 정권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장은 권력에 취해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게 없겠지만, 이렇게 구시대적이고 비상식적이고 폭압적으로 언론을 짓눌렀던 독재 정권의 비참한 말로는 역사가 증명한다. 얄팍하게 현재의 위기만을 모면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길 바란다. 지금이라도 그 썩어빠진 언론관을 전면 시정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면, 이미 임계점에 달한 국민적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24년 03월 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