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조직개편, ‘현장’도 ‘사람’도 안 보인다
회사가 9월 29일 사내 게시판에 조직개편안을 공개했다. 이성주 신임 사장 취임 보름 만이다. 기존 7본부 23국 11센터 97팀 체제가 6본부 23국 12센터 97팀 체제로 바뀌면서 경영본부는 미래성장본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인프라본부의 핵심 축 중 하나였던 미디어IT센터가 사라졌다. 인프라본부 소속이던 IT솔루션팀은 미래성장본부 산하에 신설된 ‘AIT센터’로 이관돼, 업무 영역이 서로 달랐던 정보콘텐츠팀, AI전략팀과 한데 묶였다. 반면 예능본부는 국 단위 조직인 ‘예능스튜디오’로 축소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제작본부 산하로 들어갔다. MBC 구성원들의 업무와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조직 전반에 전방위적 파장을 가져올 중대한 변화다.
향후 이 조직개편이 가져올 효과를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본격적인 실행에 앞서 노동조합이 사측에 반드시 지적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조직개편은 그 폭과 내용을 불문하고, 명확한 비전과 구체성 있는 실행 계획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사측은 이번 개편의 이유와 목적을 구성원들에게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현장의 의견 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으며, 정상적으로 진행해야 할 절차마저 일부 건너뛰었다. 조합은 이처럼 조급하게 단행된 이번 조직개편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교한 ‘설계도’ 없는 거친 ‘조감도’…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조직개편
MBC 구성원들은 이성주 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의 최종면접 당시 “회사의 위기를 헤쳐 나가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의 생각이 제일 중요하다”며, “모든 일은 현장, 그리고 사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던 것을 기억한다. 방문진 경영평가보고서를 밑줄 그어가며 참고서처럼 공부했다던 신임 사장이었기에, 취임 후 조직의 현실을 치밀하게 파악한 뒤 MBC의 새로운 목표를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조직개편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성주 사장과 사측이 정교한 설계도 하나 없이 거친 조감도 한 장만 손에 쥔 채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조직개편안 첫 논의는 사장 취임 나흘 만인 9월 18일에 이뤄졌다고 한다. 사장과 본부장 내정자들이 모여 이사회에 준하는 방식으로 개편안을 다듬었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신임 경영진은 기존 조직의 기능과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빠듯한 시간에, 조직 전체를 바꾸는 작업부터 착수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선후가 이만저만 바뀐 게 아니다. 게다가 본래 조직 설계와 사규 개정의 총괄 책임은 기획본부에 있다. 그러나 정작 기획본부장은 공석이었고, 개편 실무를 총괄할 정책기획팀조차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측은 핵심 주무 부서의 임원도, 실무 검토 체제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획 라인을 통째로 패싱하며 열흘 만에 조직개편을 최종 마무리했다.
이처럼 정상적인 절차를 건너뛴 성급한 결정은 결국 기본을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국별 업무 분장을 담은 ‘직제규정’만 급히 개정하고 정작 부서별 상세 업무 분장을 담은 ‘직제내규’는 개정 절차를 아예 누락한 것이다. 작은 팀 하나를 신설할 때조차 직제내규 개정을 항상 선행해 왔던 관례에 비추어볼 때,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최소한의 준비도 없이 외형적 틀만 대충 그려놓고 그 안에 업무를 억지로 끼워 맞추듯 개편을 강행한 것이 아닌가.
목적도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현장과 사람에서 출발” 약속 지켜야
개편 추진 과정에서 현장과의 소통은 사실상 전무했다. 사측이 조합에 개편안 내용을 처음 설명한 것은 9월 22일 늦은 오후였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조합은 사측에 여러 경로로 끊임없이 절차적 하자와 현장의 우려를 전달하며, 충분한 숙의를 거쳐 개편안을 신중히 재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끝내 성의 있는 해명 없이, 일부 수정만을 거친 조직개편을 추석 연휴 직후 단행했다. 조합은 사측의 이 같은 불통 행보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최근 사내 게시판에 잇따라 올라오는 구성원들의 당혹감 섞인 목소리 역시 사측의 밀어붙이기 행태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조직개편이 경영권의 영역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경영진의 몫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미디어 산업의 위기 속에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눈부신 성과를 일궈낸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통보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설명이다. 과연 이번 조직개편이 각 부문의 전문성과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인가. 치열한 콘텐츠 경쟁 시장에서도 <신인감독 김연경> 같은 작품을 터뜨리며 기획력과 화제성을 입증하고 시청률 상승과 수익 창출에 기여해 온 조직, 핵심 수익 사업과 직결되는 콘텐츠 전송 업무는 물론,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온라인 스트리밍 채널 수십 개를 365일 24시간 빈틈없이 관리하며 급변하는 OTT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해온 조직 등 제 몫을 100% 이상으로 다해온 우수한 부서들을 축소하고, 분리하고, 이동시키는 명분이 무엇인가. 조직개편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다양하겠지만 뚜렷한 비전, 합당한 근거, 성의 있는 설명이 빠진 결과물이라면 이에 공감할 구성원은 아무도 없다. 일터에 대한 자부심이 씁쓸함과 서글픔, 나아가 분노로 바뀌고 있는 것이 지금 현장의 분위기다. 이렇게 구성원들의 몰입과 헌신을 꺾는 조직개편을 어떻게 혁신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신임 사장 내정 직후 조합은 분명히 당부했다. 조직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정책은 반드시 구성원과의 사전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하며, 합리적인 설득과 투명한 절차로 신뢰와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임 사장의 행보는 그 당부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새 경영진 출범과 함께 우리 앞에 주어진 험난한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두 지혜와 마음을 모으기에도 버거운 시기에, 설명 없이 내려온 조직도 한 장이 구성원들에게 혼란과 답답함을 안기고 있다. 사측은 논리도, 설득도 부족한 조감도 대신 구성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설계도부터 제시하라. 그것이 “현장과 사람에서 출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실천이라 우리는 믿는다.
2026년 10월 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서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