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이용마 조합원 6주기 ]
마침내 이용마가 꿈꾼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소중한 선배이자 아끼는 후배, 든든한 동료였던 故 이용마 기자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여섯 해가 흘렀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떠나보내던 날의 황망함, 그의 웃음처럼 환하게 내리쬐던 그 날의 햇살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꿈꾸고 외쳤던 세상, “공영방송을 온전히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변화가 우리 눈앞에 처음으로 명징하게 다가오고 있는데 정작 그는 왜 지금 우리 곁에 없는 것인지요. 그 속절없음 앞에서, 더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단어로나마 그의 삶을 추억합니다.
그는 ‘권력 앞에 굽히지 않고 진실 앞에 단호했던 기자’였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다짐을 새겼던 정치학도 이용마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MBC 기자가 되었습니다. 사회와 경제, 검찰과 정치 부서를 거치며 한국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성역 없이 취재했습니다. 그는 ‘공영방송 MBC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 싸웠던 조합원’이었습니다. 정권이 MBC 장악을 위해 낙하산 김재철을 사장으로 내리꽂은 시절, 그는 “기껏해야 해고밖에 더 되겠는가”라며 담담히 조합 집행부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공정방송 사수 ‘170일 파업’의 선봉에 섰고, 동지들과 함께 부당해고의 피해자가 됐습니다. “파업은 정당하고 해고는 무효”라는 법원의 두 차례 판결마저 회사가 무작정 거부하면서 해직의 세월이 2천 일을 훌쩍 넘겼을 때조차 그의 신념과 의지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듯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불의의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고,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해직 기간 중 발견된 몹쓸 병마조차 그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복막암 말기 판정 뒤에도 그는 광장으로 나가 “언론이 바로 서야 모든 것이 바로 설 수 있다”, “공영방송을 원래 주인인 국민의 품에 돌려줘야 한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정치란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일이고, 언론은 그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존재여야 한다”, “언론의 자유 없이는 민주주의가 제자리에 설 수 없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외칠 때 ‘누구보다 뜨거운 투사’였던 이용마는, 5년 9개월의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야윈 몸으로 휠체어를 타고 회사에 다시 출근한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는 소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다수다.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복직한다면 그 부분에 좀 더 힘써서 따뜻한 뉴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누구보다 따뜻한 언론인’ 이용마였기에 할 수 있던 말이었습니다.
그의 한결같은 외침,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씨앗이 이제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방송법 통과로 38년 만에 언론개혁의 첫발을 뗐고, 방문진법 통과 역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그의 간절한 믿음이, 믿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어깨 겯고 함께 나아가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용마와 함께 꾸었던 꿈, 이용마와 함께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2025년 8월 2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