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스폰서>작가에 ′간첩몰이′기획..되풀이 돼서는 안 될 정권의 추악한 방송 장악 민낯

어제 <PD수첩>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언론인 대상 불법사찰 문건을 대량 입수해 보도했다. 대법원이 2020년 11월 ‘정치 사찰 정보는 국정원 직무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찰 피해 당사자가 요구할 경우 국정원은 해당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수십 명의 언론인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직접 받아낸 문건들이다. <PD수첩>이 입수한 국정원 문건은 모두 152건. 짧게는 6년 길게는 12년 전에 작성된 내용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방송장악 위한 편집증적 ‘종북’ 프레임 덧씌우기…환경문제 지적해도 ‘종북’, 해고노동자 조명해도 ‘종북’, 검사 비리 고발해도 ‘종북’

국정원의 MBC 장악은 시작부터 끝까지 ‘종북 몰이’였다. 남북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북한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적 없는 기자와 피디들을 일제히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고, 댓글부대를 동원해 대대적인 인터넷 여론전을 펼친 사실이 문건 곳곳에서 발견됐다. 4대강 사업의 환경적 영향을 지적해도 ‘종북’, 대기업 해고 노동자의 삶을 조명해도 ‘종북’,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을 비판해도 ‘종북’, 검사 비리를 고발해도 ‘종북’이라 몰았다. 대놓고 MBC 내 ‘종북기자, 종북피디 리스트’를 작성하는가 하면, 경영진이 PD수첩의 한 PD를 부서 밖으로 쫓아내자 ‘종북세력 수괴 제거’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하기도 했다. 그 어떤 문서에도 해당 기자, PD들의 종북 증거는 단 하나도 제시돼 있지 않았다. 그저 MBC 방송장악만을 목적으로 ‘종북좌파’ 프레임을 덧씌우기 위한 편집증적 공작을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것이다.

<검사와 스폰서> 집필 작가에 ‘간첩몰이’ 기획

PD수첩 프로그램만 12년간 집필해 온 정재홍 작가에 대한 국정원 대응 문건은 충격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국정원은 <(대공) MBC ‘PD수첩’ 정재홍 작가 물의행태 대공차원 검토 필요> (2012.8.7.)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정 작가에 대해 “대공 차원의 내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작성해 보고했다. 사실상 정 작가를 간첩으로 간주하고 내사를 통해 먼지까지 탈탈 털어내 ‘간첩 몰이’를 하겠다는 기획이었던 것이다. 해당 문건에는 정 작가의 대표작으로 계룡대 9억원대 군납비리 의혹, 검사와 스폰서 3부작,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등이 나열돼 있었다. 모두 정부를 비판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비리를 고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보도였다. 당시 정권은 소위 ‘불편한’ 방송을 만든 제작진들을 모두 ‘빨갱이, 종북세력, 간첩’으로 간주해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사찰하고 감시하고 대응했던 것이다.

MBC 언론인 대상 ‘사이버해킹’ 정황 발견

국정원이 공개한 문서 중에는 MBC 언론인을 대상으로 사이버 해킹까지 벌인 정황이 의심되는 문건도 있었다. <주요인사 사찰 의혹 관련 조사 결과>라는 제목의 문서에 “MBC PD수첩 최승호 PD 등 민간인 다수에 대한 사이버 점거를 시도, 일부 성공한 정황 확인”이라고 적혀있다. 대상자 9번에 최승호 PD 이름이 올라있고, <붙임> 자료에는 실제 최PD의 일상을 하루 단위로 나눠 보고한 내용까지 담겨있었다. 언론인 사이버 해킹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론화된 적이 없었던 내용인 만큼 소름 돋는 대목임이 분명하다. 국정원 공개 문서에는 정보공개청구 대상자 외의 등장인물 이름은 모두 지워져있다. 따라서 해당 문건만으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사이버 해킹이 시도됐고, 심지어 일부 성공을 했다면 이는 지금이라도 수사를 통해 진실을 파헤쳐 그에 따른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할 부분이다.

다시는 재현되어선 안 될 국가가 자행한 추악한 범죄

국정원이 MBC를 사찰하고 방송에 개입했었다는 사실은 이미 5년 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발표 내용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 과정을 통해 확인돼 알고 있던 바이다. 제작진 좌천 인사와 프로그램 폐지, 조직개편까지 국정원이 기획해 경영진에 하달되어 시행됐던 증거는 이미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추가로 드러난 사실들은 더욱 충격적이고 공포스럽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국정원 안에 우리가 모르는 또 무엇이 꽁꽁 은폐돼 있을지 두렵고 무섭다.

선거 앞두고 반복되는 ‘데자뷰’의 순간들

우리는 정권을 잡은 권력이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민주주의 국가가 한순간에 어디까지 추락하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이미 생생하게 경험했다. 다시는 재현되어서는 안 될 국가가 자행한 추악한 범죄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과거의 끔찍한 경험들이 마치 데자뷰처럼  스치게 되는 순간들이 최근들어 자꾸 반복되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 배우자의 검증 보도를 준비 중인 방송사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떼로 몰려들어 불방을 요구하는 협박을 하는가 하면, 대선후보 배우자라는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되면 마음에 안 드는 언론사는 손을 봐주겠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집권 초기 대언론 기조가 ‘프레스 프랜들리(Press Freindly)’였던 이명박 정권도 국정원을 동원해 MBC를 사정없이 짓밟고 장악했었다. 그런데 선거도 치르기 전에 벌써부터 언론의 자유와 언론사 알기를 이토록 하찮게 여기는 후보와 후보 배우자는 지금껏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대선이 이제 꼬박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유력 대선 후보들과 여야 정치권에 강력히 고한다. 국정원을 동원한 과거의 끔찍한 방송장악과 언론인 사찰은 결코 또다시 재현되어선 안 될 국가적 범죄이다. 그 어떠한 형태로든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러올 뿐이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국민에게 그저 쓰라린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야 할 것이다.

2022년 2월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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