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실위 메모 / 21대 대선 보도 중간평가
<MBC뉴스는 여전히 ‘12월’에 머물렀나>
12·3 불법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모두는 국가의 체계와 질서가 권력자 개인의 광기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지를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던 이 시기에 MBC뉴스는 다른 어떤 방송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늘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늘 최선을 다했고, 중립의 허울 뒤에 숨어 침묵하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진정성이 있었기에 우리 구성원 모두가 자부심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란을 넘어, 탄핵을 지나 대선 정국에 접어들면서 시청자들의 관심도, 구성원들의 자부심도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 압도적 시청률 1위를 구가하던 메인뉴스 시청률은 대통령 선거라는 빅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계엄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여전히 선두라지만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따라잡히고 있다. 보도본부 구성원 사이에서는 “우리 뉴스가 언제부터인가 너무 오만해졌다”는 반성 섞인 탄식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민실위원들은 대통령 탄핵 선고 직후인 4월 7일부터 MBC와 경쟁 방송사의 대선 관련 뉴스를 공동 모니터링하며, 4월 하순부터 뉴스룸 구성원들에게 주간 모니터링 보고서를 제출했다.
50여일 동안 우리 뉴스의 경쟁력과 장단점을 타사와 비교 분석한 민실위원들의 수많은 의견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우리 뉴스는 언제부터인가 내란 프레임에 갇혔다.”
내란 세력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이제 막 발을 디뎠을 뿐이며, 모든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도 않았다. 내란에 가담하거나 침묵으로 동조한 자들이 여전히 도처에 남아 있다. 심지어 헌정질서를 부정한 세력들이 뻔뻔하게 다시 권력을 향해 고개를 드는 조짐조차 보인다. 이러한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구성원은 없고, 이를 감시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구성원도 없다. 다만, 지금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언제까지 ‘앵그리 뉴스’로만 남을 것인가
계엄군이 국회를 침탈하는 장면을 놓고 앵커가, 기자가 이례적으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을 때 많은 시청자들은 거부감을 갖기보다 오히려 위로를 받고 기꺼이 그 분노에 공감해 주었다. 사안의 무게와 충격 때문도 있지만, 전 국민이 그 날의 범죄를 두 눈으로 목격했고, 내란 세력은 단죄해야 마땅한 현행범이라는 공감대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노가 보다 복잡한 다른 논란에도 그대로 투사된다면 어떨까. 이달 초 대법원이 2심 판결을 뒤집고 이재명 후보에게 공직선거법 유죄를 선고하자 앵커까지 직접 나서 사법부를 맹렬하게 규탄했다. 이례적으로 빠른 재판 속도였고, 심리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어디까지나 합리적 의심의 영역, 취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이 사건을 마치 더 이상의 확인도 필요 없는, 내란 현행범을 고발하던 어조로 보도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정한 과거 권력을 향하던 서릿발 같은 비판적 시각으로 미래의 권력 또한 감시했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대선, 우리 뉴스에서 폐부를 찌르는 검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앵커와 취재 기자가 쓰는 수사적 표현은 내란 국면 때 못지 않게 강렬했고, 보도 건수도 타사보다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팩트를 놓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한덕수 전 총리가 권한대행 직을 유지한 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할 때도, 내란세력과 절연할 것인지, 암묵적으로 동조할 것인지 김문수 후보가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때도 우리 뉴스보다 SBS나 JTBC의 비판이 오히려 더 ‘유효타’로 느껴진 적이 많았다. 가장 대권에 가까이 있기에 가장 치열한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비판보다 옹호에 급급한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후보별 보도 꼭지수나 분량에 있어 기계적 균형은 유지했지만, 이 후보에 대한 검증 보도는 미묘하게 김문수 후보에 비해 분량이 적거나 방송 순서가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방향의 보도를 현업 부서에 주문했다가, 이후 해당 기사가 소리 없이 큐시트에서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그날 뉴스룸에서는 “기사가 편집부의 ‘출제 의도’에 맞지 않았나보다”는 비아냥 섞인 자조의 말이 돌았다.
앞을 비춰야 할 때 뒤만 보고 있다면
또 하나 아쉬운 점은 후보들의 공약 검증이 어느 때보다 부실했다는 점이다. MBC는 공식선거운동 시작 8일 뒤인 지난 20일에야 공약 검증 보도를 시작했다. KBS에 비해서는 보름, 지난 대선 우리 뉴스와 비교하면 두 달 넘게 늦은 것으로 투표를 2주 남긴 시점, 이미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공약을 검증하겠다며 나선 셈이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위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공영방송의 의무를 방기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뉴스룸에서는 이에 대해 ‘거대 양당의 공식 공약집 발간이 늦어져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한참 전부터 후보들은 매일 같이 유세 현장에서 공약을 쏟아내고 있었고 거대 양당의 주요 공약 상당수는 갑자기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정책간담회나 공청회 등을 통해 가다듬어진 결과물로 취재를 통해 관련 자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의 취재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우선순위를 낮게 뒀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 뉴스룸은 오래 전부터 이번 대선의 의미를 ‘12·3 내란의 연장선, 내란에 대한 반성과 질서의 회복’으로 규정해 왔다. 상당 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오직 과거에 대한 청산 과정 중 일부로 치부하기에 이번 대통령 선거는 향후 대한민국의 앞날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칠 중대한 변곡점이다. 공동체의 내일을 위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고 공론의 장을 확대하는 것 또한 공영방송의 의무다. 내란 사태를 극복하며 얻은 관심과 성원을 디딤돌 삼아 독보적인 1등 뉴스로서 ‘초격차’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
그럼에도 고무적이었던 것은, 이번 대선 보도 모니터링 과정에서 우리 조직 내에 여전히 활발한 소통의 DNA와 건전한 비판에 대한 존중의 문화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연차와 직급을 막론하고 많은 구성원들이 민실위 활동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격려해 주었을 뿐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국장단과 각 보직 팀장들 또한 후배들의 쓴소리를 성실히 경청하고 실제 보도와 편집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든 의견이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더라도, 서로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하루 하루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할 수 있다면, 이 모든 과정이 우리 뉴스의 힘으로 축적되고 발현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