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실위 메모] 기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기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장남에 ‘음주운전’.. 벌금 900만 원>이라는 제목의 5년 전 기사가 우리 뉴스 홈페이지와 포털 뉴스 게시판에서 삭제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매체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기사를 쓴 취재기자 본인은 개인적 사정을 앞세운 기업 임원의 읍소에 휘둘려 기사를 지우기로 결정하고, 기사의 주무 부서도 아닌 현재 소속 팀장에게만 보고한 채 관련부서에 삭제를 요청했다. 해당 팀장 또한 자신에게 기사 삭제를 판단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조차 제대로 숙고하지 않은 채 이를 승인했다. 어떤 외압이 있더라도 가장 치열하게 자신의 기사를 지켜내야 할 장본인이, 자신의 업을 한없이 가벼이 여겼다는 사실에 허탈함과 수치심을 느낀다.

 

 

지난달 말 열린 인사위원회에서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경징계인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인사는 회사의 권한임을 존중한다. 또한 이번 일 자체가 초유의 사태이기에 징계 수위가 적절했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가 적정했을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조치를 계기로 우리 조직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만큼 충분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을 거라 여긴 구성원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의미 있는 부분을 찾자면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실무 부서 차원의 구두 가이드라인 수준으로만 공유되던 보도 수정 및 삭제의 원칙이 <뉴스콘텐츠 수정 및 삭제 지침>이라는 사규 형태로 명문화되었다는 점이다. 해당 지침에 따라 이번주 MARS 시스템 또한 업데이트되어 권한 없는 자의 기사 삭제가 제한되고, 기사가 삭제될 때 보도책임자가 그 사실을 곧바로 인지하도록 된 것도 우리 조직 내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일 뿐 아니라, 타 언론사들의 현대차 기사 삭제 사례와 같은 제3자에 의한 무단 삭제를 기술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사의 주인이요, 보도 공정성을 지키는 최전선을 자임해 온 일선 기자의 권한은 한 발짝 후퇴했다. 기사를 수정할 때 취재기자 본인의 판단에 따라 부서장의 승인을 받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부서장 판단 아래 기자는 의견을 내고 실무를 수행하는 ‘주변인’ 위치로 격하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일선 기자의 권익을 대변해 온 민실위도 이번 사규 개정 과정에서만큼은 차마 취재기자가 기사의 1차적 책임을 지는 자이기에, 그만큼의 권한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평소처럼 당당히 말할 수 없었다.

 

 

발제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편집해 방송이 나가는 순간까지 해당 기사의 최우선적 책임과 권한은 기자에게 있지만, 그렇게 보도된 기사는 더 이상 기자 개인의 것이 아니다. 공영방송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낸 모든 보도 결과물은 형식, 길이, 주목도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와 시민을 위한 공공재이며, 따라서 누구라도 기사를 함부로 타협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이는 사규와 지침을 논하기에 앞서 방송강령 첫머리에 명시된 바와 같이 “방송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심하고 공영방송으로서 정직한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직업윤리인 동시에, 언론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우리 모두가 동의했던 기본 원칙일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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